작년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6개월째 운동을 하는데 몸이 그대로라고 했다. 식단도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솔직히 단순했다.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조금 더 들어보니 운동은 일주일에 사흘쯤 갔다. 다만 갈 때마다 30분만 있다가 나왔다. 식단은 점심까지는 챙겼지만 저녁은 그날 기분에 맡겼다. 운동도 식단도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계속 빠져나가는 구멍이 있었다.
본인은 그 구멍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를 안에서 들여다보면 분명히 무언가 하고 있다고 느낀다. 매일 신경 쓰고, 매일 결심하고, 매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는 안다. 그 느낌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노력이 실제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다. 30분 머물다 나온 운동은 기억 속에서 "운동한 날"로 저장된다. 저녁의 흔들림은 "오늘은 좀 그래서" 정도로 정리된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자기 안의 기록 방식이 있고, 그 기록은 대개 자기에게 조금 유리한 쪽으로 기운다. 일부러 속이는 것이 아니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보면 원래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는 자기를 다른 자리에서 비춰볼 필요가 생긴다. 자기가 자기에게 내린 평가가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한 번 더 보는 일.
거창한 일은 아니다. 한 달치 일정을 펴놓고 보는 것도 거울이고,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요즘 어때 보여?"라고 묻는 것도 거울이다. 누군가에게는 상담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쓴 일기를 다시 읽는 일이 거울이 된다.
중요한 것은 거울의 종류가 아니라 거울 앞에 서려는 마음이다. 거울 앞에 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비춰본 사람과 한 번도 비춰보지 않은 사람은 다음 선택에서 달라진다.
여기 있는 도구들은 그런 거울 중 하나다. 점쟁이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미래를 단정하지 않고, 병을 진단하지 않는다. 몇 가지 답을 바탕으로 지금의 방향을 한 장의 그림처럼 정리해 돌려줄 뿐이다.
그 그림이 자기가 알던 자기와 같다면 "역시 그렇구나" 하고 넘기면 된다. 다르게 나온다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들여다보면 된다. 결정은 언제나 자기가 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끌어당김 진단이다. 머리로 가고 싶다고 말한 방향과 매일의 행동이 실제로 향하는 방향, 그 두 화살이 같은 곳을 가리키는지 본다. 앞의 운동 이야기처럼 의식과 실제 행동이 미세하게 어긋나는 자리를 짚는 도구다.
운동이 쌓이지 않던 그 사람은 그 뒤 몇 달에 걸쳐 자기 습관을 다시 봤다고 했다. 운동 시간을 늘린 것이 아니라, 왜 30분만 있다 나오는지를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다음은 본인의 몫이었다.
다만 한 번 비춰본 사람에게는 다음 선택이 다르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