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주, 다른 인생

출발점이 같다고 도착점이 같지는 않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어도, 같은 두 시간 안에 태어나는 사람은 많다. 사주는 두 시간 단위로 시주가 잡히니 그 안에 태어난 사람들은 같은 사주를 갖는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은 결코 같지 않다.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누군가는 회사원이 되고 누군가는 음악가가 되며, 누군가는 자녀를 셋 두고 누군가는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

출발점은 같지만 지도는 다르다

사주는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의 천체와 절기가 만든 조합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기본 성향을 어느 정도 묘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뻗어나가고 펼치려는 힘이 강하고, 어떤 사람은 정리하고 구분하려는 힘이 강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성향이 어떤 환경을 만나는지, 어떤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지, 어떤 사건을 겪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같은 기질도 안정적인 집에서 자라면 안정 지향으로 나타나고, 도전이 일상인 집에서 자라면 모험 지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출발점은 같아도 걷게 되는 지도가 다르다.

운명이 아니라 출발점

사주를 운명으로 읽으면 사람을 닫힌 책처럼 보게 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살게 된다"는 식이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주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인생을 살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주는 운명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나는 사주를 출발점으로 본다. 출발점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려주지만, 어디로 갈지를 대신 정해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를 줄여가는 일이 삶이다.

사주가 쓸모 있는 순간

사주가 미래를 단정하는 말로 쓰일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문장으로 한 사람의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성향에서 출발했는가"를 보는 도구로 쓰일 때는 다르다. 자기 객관화의 거울로서, 자기가 모르던 모습을 한 번 비춰주는 도구로서는 충분히 쓸모가 있다. 거울 없이 자기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고, 거울이 있어도 정직하게 보는 일은 어렵다.

다른 인생을 만든 것

그렇다면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을 갈라놓은 것은 무엇인가. 환경, 선택, 만난 사람, 결정적 순간의 한 번의 용기, 한 번의 머뭇거림. 그리고 자기를 얼마나 정직하게 봤느냐다.

자기 성향을 알면서 그 결을 따라간 사람과, 자기 성향을 모른 채 사회가 좋다고 한 길을 따라간 사람의 인생은 다르다. 자기 성향을 알면서 일부러 거슬러 본 사람과, 모른 채 무작정 부딪힌 사람의 인생도 다르다. 아는 채로 살았느냐, 모르는 채로 살았느냐가 같은 출발점의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일은 미래를 알아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출발점을 한 번 정확히 확인하는 일이다. 거기서부터 어디로 갈지는 매일 자기가 정한다.

같은 사주를 가진 다른 누군가가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Exition의 사주·점성 분석은 그 출발점을 동양 사주와 서양 점성 양쪽에서 비교한다. 두 분석이 같이 가리키는 부분과 다르게 가리키는 부분 사이에 한 사람의 출발점이 놓인다.
출발점은 받고, 길은 매일 새로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