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5년 동안 책을 한 권 쓰겠다고 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씩 글을 쓴다고 했다. 5년이면 책 한 권쯤은 나올 줄 알았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본인도 이해하지 못했다. 게으른 것도 아니고, 새벽에 일어나는 일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참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가 매일 새벽 두 시간 동안 쓴 것은 한 권의 책이 아니었다. 매일 다른 글이었다. 어떤 날은 어제 떠오른 이야기를 적고, 다음 날은 다른 주제로 갔고, 그 다음 날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5년이면 그렇게 쓴 글이 두꺼운 책 몇 권 분량은 되었을 것이다. 다만 한 권의 책이 되지는 않았다.
5년의 새벽이라는 시간이 적은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이 정말 한 권의 책을 향해 매일 한 챕터씩 갔다면, 책은 진작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새벽은 한 권을 향하지 않았다. 매일 다른 곳을 향했다.
본인은 "글쓰기"라는 같은 일을 매일 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노트북을 열고, 두 시간 동안 손가락이 움직이고, 어쨌든 글이 쓰였으니까. 그런데 안에서 보면 같은 일이지만, 결과로 보면 매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일은 인생의 큰 그림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다.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매일의 결정들이 미세하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서 1년 뒤 어디에도 모이지 않은 채 남는다.
그가 그날그날 새 글을 시작할 때마다 "이게 진짜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어제의 글보다 오늘의 글이 더 맞는 것 같고, 어제 못 본 어떤 진실을 오늘 본 듯한 감각. 그래서 어제의 글을 두고 오늘의 글로 옮겨가는 일이 자기 안에서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옆에서 보면 그 사람이 매일 다른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본인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 안의 시간은 어제와 오늘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제의 선택과 오늘의 선택 사이의 어긋남이 매끈한 한 가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자기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달, 1년, 5년의 결정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한 발 떨어져서 봐야 보인다.
이런 상태의 사람에게 가장 흔히 주는 조언은 "더 노력해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5년 동안 매일 새벽에 일어난 사람에게 더 노력하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부족한 것은 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한 권을 끝까지 향해 가는 일이었다. 그날그날 새 글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도, 어제 쓴 챕터의 다음 챕터를 쓰는 것. 그 작은 결정의 누적이 5년 뒤 한 권의 책이 된다. 매일 그 결정을 새로 내려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너무 늦은 말 같았다. 다만 그 이후로 새벽을 오래 지켜온 사람을 만나면 한 가지를 묻게 되었다. 그 새벽 시간은 매일 같은 방향이었는가.
노력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방향이 문제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방향의 어긋남은 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매일의 결정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어서, 그것들이 모여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흐려지는 것이다.
한 발 떨어져서 자기 결정의 1년 누적을 봐주는 거울이 필요하다. 그 거울이 한 번 있으면 다음의 매일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