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작년에 좋은 제안을 받았다. 큰 기업의 임원 자리였다. 10년 넘게 그쪽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지금은 좀 아닌 것 같다"였다. 처음 들을 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가 마지막에 잠깐 말했다. "솔직히 그 자리에 제가 앉아 있는 게 그려지지가 않더라고요."
그 자리에 자기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서 거절한 것이었다. 본인 안에서는 "지금은 아니다"였지만, 실제로는 그 감각이 결정을 밀어낸 셈이다.
"내가 그런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각은 보통 지금의 객관적 평가가 아니다. 어울리지 않을 만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잘 대지 못한다. 그래도 그 감각은 또렷하고, 결국 손을 거두게 한다.
그 감각의 출처는 보통 오래전 어떤 장면에 있다. 부모가 자주 다른 형제와 비교하던 식탁, 학교에서 들었던 한마디, 어른들이 자기에 대해 함부로 내린 평가. 그런 자리에서 처음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각이 새겨지면, 30년이 지나도 비슷한 모양으로 다시 올라온다.
그래서 지금 자격이 없다고 느낀다면, 그 감각이 정말 지금의 자기 상태에 대한 평가인지, 아니면 오래된 어떤 장면에서 옮겨온 감각인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두 답이 다를 때가 많다.
그 임원 자리를 거절한 사람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그는 그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10년 전쯤 다른 좋은 기회가 왔었는데 그때도 "지금은 아니다"로 거절했다고 했다. 본인은 두 거절을 따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때 그 사정이, 또 한 번은 이번 그 사정이 있었던 것이라고.
옆에서 보면 두 거절은 같은 모양이었다. 좋은 기회가 가까이 왔을 때 본인이 손을 거둔 것. 한 번이면 우연이지만 두 번이면 패턴이다. 다만 그는 그 패턴을 자기 안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좋은 일을 자기도 모르게 멀리하는 사람을 보면, 비슷한 결정이 인생에 두세 번 이상 누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가 다음에 또 좋은 제안을 받아도 같은 모양으로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 본인이 그 패턴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흔히 주는 조언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기에게 말해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 통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100번 그렇게 말해도,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감각은 그런 말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의지로 누른 신념은 의지가 약해질 때 다시 올라온다.
그보다 필요한 것은 작은 것을 받아보는 일이다. 누가 차를 사주는 것을 그냥 받아보는 것. 칭찬을 들었을 때 "그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밀어내지 않는 것. 자기 시간을 자기를 위해 쓰는 것. 작은 받음이 한 번씩 쌓이면 깊은 곳의 감각도 천천히 갱신된다.
자격이라는 것은 받기 전에 완성되지 않는다.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받을 만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한 번 받아보면 그것이 자기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보며 조금 익숙해진다. 두 번째에는 덜 낯설고, 세 번째에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진다. 그 사이에 깊은 곳의 자기 정의가 천천히 바뀐다.
그 임원 자리를 거절한 사람과는 그 뒤로 한 번 더 만났다. 그때 처음으로 그 패턴 이야기를 꺼냈고, 그는 한참 듣고 있다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만 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 번 그 패턴을 보고 나면, 다음 좋은 제안이 왔을 때 그는 한 번은 더 멈춰서 자기에게 물어볼 것이다. 이게 정말 지금의 결정인지, 아니면 오래된 어떤 장면에서 다시 올라온 감각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