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가장 잘 풀리던 시기에 갑자기 무너진 사람을 몇 명 보았다. 매출이 좋았고, 팀이 늘었고, 주변에서 부러워했고, 본인도 좋은 시기라고 말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한 번에 무너졌다.
옆에서 보면 갑작스러웠다. 잘 풀리던 사람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들이 그 시기를 다시 이야기할 때 비슷한 말이 자주 나왔다. "그때 사실 어딘가에서 계속 새고 있었지."
본인들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다만 다른 것들이 너무 잘되고 있어서, 새는 곳을 못 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잘되고 있을 때 사람은 보통 잘되는 쪽을 본다. 매출이 늘면 매출을 보고, 사람들이 자기를 좋게 평가하면 그 평가를 보고, 결과가 모이면 그 결과를 본다. 자연스러운 시선이다.
그런데 잘 풀리는 시기에도 사람 안에서는 한 가지 흐름만 흐르지 않는다. 어딘가에서는 채워지고 있고, 어딘가에서는 천천히 새고 있다. 매출이 늘던 시기에 가까운 관계 하나가 조용히 멀어지고 있었을 수 있고, 외부 평가가 좋던 시기에 자기 안의 평가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작은 누수는 큰 호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모든 것이 잘되고 있으니, 한 곳에서 새는 일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본인은 알고 있지만 굳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구석이 있고, 잘되는 시기에는 그것을 더 쉽게 미룬다.
한 곳의 누수가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 안의 흐름은 어디서 새기 시작하면 다른 곳까지 천천히 영향을 준다. 가까운 관계 한 곳에서 거리가 벌어지면 안정감 한 층이 깎이고, 그 안정감이 깎이면 자기 평가도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다시 결정의 질을 낮춘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일이 가장 잘되던 시기에 사실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었다고. 일이 커지면서 진짜로 의지하던 한 사람과의 거리가 천천히 벌어졌는데, 그 벌어진 자리를 일이 잘된다는 사실로 덮고 있었다고 했다. 그 누수가 1년 반쯤 지나 다른 영역까지 번졌다.
그때 그것을 좀 더 일찍 봤다면 어땠을까. 본인도 그 점을 가장 후회한다고 했다. 잘되는 것만 보느라, 같은 시기에 새고 있던 구석에 손을 대지 못한 일.
채우는 활동을 늘리는 것보다 새는 곳을 줄이는 일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새는 곳은 보통 자기가 외면해온 구석에 있다. 한 번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무엇이 새고 있는지 비교적 빨리 보인다. 그것을 멈추거나 줄이면 큰 노력 없이도 자기 안에 남는 것이 늘어난다.
이 일은 잘 풀리는 시기에 하는 편이 좋다. 무너지고 나서 보면 새는 곳이 너무 커져 있어 손대기가 부담스럽다. 잘 풀릴 때 한 번씩 멈춰서 "지금 어딘가에서 새고 있는 것이 있나"를 묻는 사람은 무너지는 시점을 더 멀리 밀어낸다.
잘 풀리는 시기일수록 한쪽으로만 자기를 보면 위험하다. 잘되는 부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어딘가에서 새고 있는 곳도 본다.
두 가지를 같이 봐야 그 시기가 다음 시기로 이어진다.